chobits (2002)

 

분노의 감상문.

 

줄거리 재수생이 도쿄로 상경해 쓰레기 더미에서 인간형 컴퓨터를 줍는다.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이 아닌- 컴퓨터. 컴퓨터와 인간이 사랑에 빠지게 되는 이야기.

 

윤리와 통념이 통하지 않는 이루어질 수 없을 것만 같은 사랑이 둘에게서 이루어진다고 단순하게 생각하면 좋은 메시지를 줄 수 있는, 충분히 포텐셜이 있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나는 24화 보는 내내 화가 났다. 그래도 끝까지 다 보게 된 이유는 ① 치이(인간형 컴퓨터)가 귀여워서 → ② 치이의 정체가 궁금해서 → ③ 이 애니메이션에서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결말)가 뭔지 궁금해서.

 

화가 났던 이유는 이 이야기의 화자 때문이다. 주인공이라고 부르기도 싫다. 전형적인 일본 로맨스 만화에 등장하는 남주인공이다. 모티브는 아무래도 야망가나 미소녀 연예 시뮬레이션 성인 게임에서 따온 것 같다. 매일 성인 잡지를 보고, 여자-의 몸-에게 관심이 많지만 동정이고. 자신에게 베푼 호의를 이성적 호감이라며 시시각각 착각하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 주체가 그저 여자라면 상대를 가리지 않고 매크로처럼 얼굴을 붉히고. 변태라고 오해 받을까 봐 노심초사하면서 하지만 변태다. 제일 과한 부분은 어디가 특출나게 매력적이지 않으면서도-심지어 이 만화 그림체 안에서도 외관이 야망가나 미연시 주인공처럼 평균 이하 설정이다- 주변 인물들이 그에게 '좋은 녀석'라이팅을 한다. 아무것도 안 하는데 히데키는 좋은 녀석이구나, 히데키는 친절하구나 한다. 보는 이로 하여금 납득 갈 만한 인품을 지니지도 않고 오히려 그 반대의 소실점으로 향하고 있는데도. 시청자에게도 히데키가 귀엽고 착한 치이와 어울리는 남자라고 끊임없이 가스라이팅한다.

 

둘의 사랑에도 문제점이 있다. 치이는 대부분의 데이터가 소실된 컴퓨터다. 컴퓨터지만 컴퓨터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일반 상식도 없었다. 처음 가동되었을 때 할 줄 아는 말은 '치이'밖에 없었다. 언어 체계 수준이 '멍멍'이나 '야옹' 수준이다. 그러면서도 히데키는 외관만을 보고 여성으로 정의하고 그렇게 대한다. 여념없이 성인 잡지에 나오는 여성을 보는 것처럼 얼굴을 붉히고, 코피를 흘리고, 도키도키하고. 뭐 그런 것들. 나중에 가서는 치이가 히데키를 통해 사회를 경험하고 다른 인간과 관계를 형성하면서 인텔렉츄얼해지고 소통이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문제는 없지만. 히데키는 처음 주워 왔을 때부터 그랬다는 점이 걸린다. 아, 말이 안 통해도 그냥 여자처럼 생기면 다인가? 라는 생각이 어쩔 수 없이 든다. 애완동물-반려동물이란 말도 히데키에겐 과분하니 거부한다-처럼 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성적 대상으로 본다. 이 점이 매우 불쾌한 지점이다.

 

치이의 경우에도 그렇다. 히데키는 치이를 자신의 작은 자취방에 가둬 둔다. 꽤 오랜 분량 동안 치이는 밖에 나가지 못한다. 육체적 거리가 감정에 큰 요소인 점은 무시하진 않는다. 그러나 여러 사람을 만나 겪어 보는 충분한 경험이 존재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제대로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치이의 세계에는 히데키밖에 없다. 하루 종일 히데키를 기다린다. 히데키에게 말을 배운다. (그마저도 그의 성벽 때문에 어떤 쪽으로는 상식 밖의 정보를 무차별로 흡수한다.) 히데키에게 옷을 입는 법, 물건을 사는 법, 샤워를 하는 법을 배운다.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온통 히데키. 히데키. 히데키. 어쩔 수 없다. 콤파츠 충전은 태양열로 이루어진다고 하는데도 그는 새장이나 우리와도 같은 몇 평 남짓한 작은 방에서 치이를 보살피니까. 결국 치이가 사랑하게 되는 것도 히데키다. 그렇게 되는 것이다.

 

치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게 사랑이라고 믿고 행복하다고 느끼면 어쩔 수 없다. 그냥...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보는 내내.

 

메시지는 이렇게 받아들였다. 그림책이라는 매개로 직접적으로 전달해 주니 쉽다.

인간이든 컴퓨터든 상관없어. 나를 나로서 좋아해 줄 나만의 사람. 나만의 사랑, 이 진정한 사랑. 나(치이)가 찾는 사랑.

 

컴퓨터라 할 수 있는 것, 할 수 없는 것-뉘앙스로 보아 하면 가장 큰 것은 아이를 만들지 못하는 것-이 있다. 인간인 당신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없는 컴퓨터인데도 그래도 사랑해 줄 수 있어? 라고 묻는 기분이었다. 히데키의 주변인이 각자마다 사랑을 찾아 이어지기도 하며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 줄 기회가 많았는데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치이가 가장 인간다웠다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 줄 수 있어? 나만 사랑해 줄 수 있어? 라고 묻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 가장 인간다운 면모였으니까.

 

히데키의 주변은 점점 컴퓨터와만 관계를 맺는 사람 때문에 상처받은 누군가와 그 상처를 보듬어 주게 되는 사람. 이렇게 쌍을 이루며 이루어진다. 인간과 인간의 사랑을 추구하는데 주인공은 결국 컴퓨터인 치이와 이어진다. 그게 참 아이러니했다. 컴퓨터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은 참 디스토피아적이네, 라는 생각이 든다. 치이가 히데키와의 사랑을 통해 모든 지구상의 컴퓨터가 인간처럼 감정을 느끼게 됐으니 더더욱. 이게 해피 엔딩이 맞긴 할까? 그런 의문도 든다.

 

애니메이션은 2000년대 초반이라 작화는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그렇지만 원작 그림체는 너무 좋아요. 히데키가 안 나오는 원작이라면 원작까지 구매해 봤을 텐데. 일러스트집은 따로 구매하고 싶을 정도로 최고였다. 귀여운 치이. 그리고.... 응. 그것 외에도 애니 OP와 2기 ED 최고! ost를 참 잘 뽑았다.

 

마무리는 어떻게 하지.
치이 행복해